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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실대학교 국문학과 박진교수 이번에는 저서 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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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박성호 댓글 0건 조회Hit 5,508회 작성일Date 06-11-2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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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실대 국문학과 박진 교수 이번에는 저서 표절

    우리는 이미 숭실대학교 국문학과 박진 교수의 학위 논문 사기 표절에 관하여 여러 국가 기관에 제보한 바 있으며 현재 국가적 차원에서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박진의 학위 논문 표절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각종 검색 사이트에서 “박진 표절”을 쳐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박진은 <박태원 최인훈 비교 연구>가 무척 많으므로 어쩔 수 없이 독창성이 없는 논문을 썼다고 했는데 이는 수긍할 수 없는 변명이다. 박진이 표절한 양민숙의 논문은 이 분야에서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선구적인 논문이다. 교육대학원 논문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교육대학원 학생들 중에도 학문적으로 똑똑한 사람들이 드물게 있다. 동료 학자들이 명백하며 심각한 표절이라는 답신 메일을 보내주신 데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들은 이구동성 박진의 저서와 논문에 다른 표절이 더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최근에 다시 모여 박진의 대표저서를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여 보았다. 검색된 2개의 저서 중 발행일자가 먼저인 <<문학의 새로운 이해>>(청동거울 2004)를 대충 검토해 보았는데 역시 부도덕한 부분이 있었다. 학위 논문이 완전히 표절인 사람에 관한 더 이상의 추가 제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 여기서는 두 군데만 간단하게 지적하고자 한다.
    이 책의 1부 2장인 <서사의 플롯>은 한국소설학회 편 <<현대소설 플롯의 시학>>(태학사 1999)과 장소진 저 <현대 소설의 플롯 유형 연구>(서강대 박사 논문>(1997)를 여러 부분 요약하면서 표절하고 있다. <<현대소설 플롯의 시학>>(태학사 1999)에는 세 편의 총론적인 글이 실려 있다. 김종구의 <플롯론 · 서사구조론의 전개 양상과 소설 시학>, 양인의 <플롯의 역사성과 현대 소설의 플롯>, 장소진의 <지연과 탐색의 역학>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17편의 개별 논문이 실려 있다. 박진 책 25쪽의 논의는 김종구 <플롯론 · 서사구조론의 전개 양상과 소설 시학>의 9쪽 논의와 대동소이하다. 박진이 저서에서 달아놓은 외국책 관련 각주는 이미 발간된 다른 사람들의 저서들과 논문들에 다 있는 각주이다. 이는 일일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박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박진은 석사학위 논문에서 그랬던 것처럼 책을 읽지도 않고 각주를 달고 있었다. 각주에 달린 이 많은 원서들을 박진은 정말로 소장하고 있는 것일까! 박진은 앞으로 자신이 읽은 책만을 각주로 달아야 할 것이며 다른 학자들의 독서 결과를 도둑질해서는 안 될 것이다.
    치사하지만 한 가지 적어보자.
    다음은 박진 25쪽 <서사의 플롯> 맨앞 부분이다.
    <사실 서사 이론에서 플롯이라는 용어만큼 혼란스러운 개념도 없을 것이다. 이는 스토리와 플롯을 구별하는 기준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는 스토리가 시간적 연속에 따라 이루어지는 반면, 플롯은 인과적 논리에 근거한다고 말한다.>
    다음은 한국소설학회 편, <<현대소설 플롯의 시학>> 김종구의 글 맨 앞 부분(9쪽)이다.
    <플롯은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때로는 정의하기가 매우 어려워 보이는 소설 시학의 용어이다. 혹자는 이 개념을 굳이 우리말 구성이나 구상, 줄거리 등으로 번역하여 쓰기도 하지만 외래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보다 더 일반적이다. (한 단락 건너서) 포스터는 스토리를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배열된 사건의 서술이라 정의하면서 플롯을 이에 대응되게 인과성이 지배하는 사건의 서술이라 변별하였다.>
    박진 글의 시작과 김종구 글의 시작은 의미상 똑같다. 문장 하나씩 비교해 보자. 물론 이런 논의는 일반론적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같은 제목을 한, 서로 다른 두 논문의 시작 부분이 이렇게 똑같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다른 것 하나 지적해 보자. 이 책의 2부 5장 <은유와 환유>에 나오는 ‘수사학인가 세계관인가’는 김욱동의 저서 <<은유와 환유>>(민음사)에 나오는 ‘수사학인가 철학인가’에 나오는 논의를 전체적으로 표절하고 있다. ‘수사학인가 세계관인가’라는 특이한 세부 제목 역시 김욱동의 세부 제목 ‘수사학인가 철학인가’를 표절했다. 세계관이란 곧 철학이기 때문이다. 박진은 독자들을 바보로 아는가! 김욱동은 수사학과 철학의 변증법적 관점에서 비유에 접근했는데 이것은 곧 박진 논의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리고 박진의 책 243쪽에 나오는 “은유란 유에서 종으로 또는 종에서 유로, 또는 종에서 종으로, 또는 유추에 의해서 어떤 사물에 속하는 이름을 전용하는 것이다.”라는 번역 부분은 김욱동의 책 102쪽에 나오는 “은유는 어떤 사물에 다른 어떤 사물에 속하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름의 전이는 유에서 종으로, 종에서 유로, 종에서 종으로 이루어지거나 또는 유추를 근거로 이루어진다.”라는 번역 부분을 표절했다. 박진의 번역은 김욱동의 번역문(두 문장)을 한 문장으로 합쳐서 그리고 그 앞뒤 문장의 순서를 교묘하게 바꾸어서 사용한 것에 불구하다. 박진은 원전을 읽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이 이미 한 번역을 대강 말만 바꾸어 자기 책에서 재탕하여 써 먹고 있다. 그러나 그 부연 설명은 더 심각한 표절이다. 은유를 네 가지 종류로 나누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에 관한 부연 설명 역시 미세한 부분까지 김욱동의 논의를 표절하고 있다.
    치사하지만 한 가지만 더 적어보자.
    박진의 논의 244쪽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를 네 가지 종류로 나눴는데 그 중, 유에서 종으로, 종에서 유로 대치하는 것은 종과 유의 자리바꿈이므로 제유(또는 환유적인 것)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쓴 ‘은유’라는 용어는 다양한 비유의 갈래들을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다. 달리 말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를 비유에 대한 제유로 쓰고 있는 셈이다. 어떤 논자들은 은유 중심으로 수사적 갈래를 통합하려는 논의는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로 회귀하는 방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욱동의 논의 102쪽  
    <이 네 가지 전이 가운데에서 오직 맨 마지막 유추만이 은유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 세 가지는 은유보다는 오히려 환유나 제유에 더 잘 들어맞는다. 어찌되었든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은유란 한 대상이나 개념을 다른 대상이나 개념으로 바꾸어놓는 비유법이다. 축어적 표현에 해당하는 것을 비유적 표현으로 치환해 놓는 것이 은유라는 것이다. (한 문장 생략)적지 않은 이론가들이 이 이론을 비판하면서도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이 이론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그 영향이 대단하다.> 번역도 표절하고 설명도 표절한 것이다. 은유에 대한 똑같은 설명이니 표절이다. 박진과는 달리 김욱동은 인용하여 번역한 원전의 쪽수를 정확히 밝히고 있다. 표절한 학자와 표절하지 않은 학자의 차이점이 이런 것이다. 이 책 <<문학의 새로운 이해>>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휠씬 더 많은 표절이 발견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최정희에게 메일을 보낸 여러 동학들은 박진의 저서와 다른 논문들을 조사해 보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나 박진은 숭실대학교의 모든 사이트에서 그의 연구 목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 그의 논문 목록조차 입수할 수 없었다. 박진은 조속히 자신이 논문 정보를 공개해야 할 것이다. 조만간 학술진흥재단을 통하여 박진의 등재지와 등재후보지에 실린 연구 업적을 얻은 후에 면밀한 검토를 할 것이다. 박진은 석사학위 논문 전체 표절(더 이상의 재조사도 필요없는 명백한 표절임을 수십 명의 동료학자가 확인해 주었다.)만으로도 숭실대 국문학과 교수직에서 물러나야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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